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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뉴스

배우 윤정희 딸 윤정희

by 미토미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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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가 알츠하이머 투병중이라는 소식이 들려 안타깝다.

윤정희 남편 백건우에 따르면 10년정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한다.

비밀로 하고 있던 얘기였지만 백건우와 딸 백진희 인터뷰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윤진희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여성 배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부인이며, 1976년에 결혼했다. 

본명은 손미자.1944년 7월 30일에 출생하였고,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 전남여고와 우석대(고려대학교로 통합)를 졸업하였다. 대종상 여우주연상 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3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3회에 빛나는 전설적인 대배우이다.

1960년대 활동

1967년, 영화 청춘극장(1967)의 오유경 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남정임·문희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다. 청춘극장은 1967년 팔도극장 다음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8년에는 내시, 천하장사 임꺽정, 일본인 등으로, 1969년에는 독짓는 늙은이, 팔도 사나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는 일부분일 뿐 흥행한 영화는 이보다 많다.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배역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젊은 여배우가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청순가련형과 요부형 이 두 가지 역할이 대부분이었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

1970년대 활동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에는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 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지만 1971년 문희, 남정임이 은퇴한 반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이후 활동

그러다가 1981년, 자유부인 '81이 그 해 흥행 1위 영화가 되면서 남정임, 문희가 이미 이룬 영화 1위 흥행 여배우 자리에 뒤늦게나마 올랐다. 

1987년에는 위기의 여자로 흥행을 했다. 1994년에는 만무방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만 66세인 2010년 영화 "시"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본인의 진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알츠하이머 투병 때문에 사실상 은퇴한 상태. 당시에도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으로 대사를 적어놓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여담

백건우와 결혼 과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정희를 총애하자 이에 육영수가 백건우와 서둘러 결혼시켜 프랑스로 쫓아냈다' 류의 소문이 떠돌았다.
위의 지식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도 윤정희와 관련된 뜬소문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TV로 생중계 되었던 2006년 제27회 청룡영화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등장과 동시에 울먹거리더니 당시 수감되어 있던 절친한 동료 배우 신성일을 선처해달라는 매우 적절치 못한 망언 발언으로 엄청나게 비난받았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어리둥절.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영화배우가 있느냐'면서 영화와 TV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들을 비판하였는데 정작 그 자신도 1972년 TBC드라마 사모곡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인기 절정이던 20대 시절, 의외의 부업을 한 적이 있다. 다름아닌 통닭집. 워낙 바쁜 일정 탓에 경영은 어머니가 맡아서 하셨으나 엄연히 ‘사장’은 윤정희였다.가게의 주인이 톱스타 윤정희인데다 음식의 맛도 좋아서 한동안 성황리에 운영되었다고.

국내외의 각종 영화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무려 24번이나 수상한 대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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